필자는 요즘 주말을 이용하여,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고을을 많이 방문한다. 코로나로 인한, 모여 있는 인파를 피할 목적도 있지만, 지방 관광의 현실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지리학에서, 장소감(場所感, Sense of Place)은 사람들이 느끼는 특정 장소에 대한 느낌을 말하며, 장소성(場所性, Placeness)은 장소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Attribute)을 말한다. 장소감은 타인의 시각이며, 장소성은 내부인의 시각이다.
각 기초 시.군을 다닌 총체적인 느낌은 각 지역마다 특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국내외 관광객들이 무엇을 보고 그곳을 방문한단 말인가?
옥스퍼드 사전은 도시(City)를, “왕이나 여왕에 의하여 특별한 권한이 주워진 마을로, 보통은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정의하여 도시의 중심에는 대성당이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유럽의 중소도시를 방문하면, 그 중심부에는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 예전 한국의 중소도시의 중심은 무엇이었는가? 고지도를 보면, 관아(官衙)와 향교(鄕校)가 구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지역 고지도를 많이 관찰하고 있는데, 고지도에는 전국의 각 고을 마다, 관아가 그려져 있으며, 향교, 사찰 등 여러 가지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지명들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8도에 330여개의 지방 행정 구역이 있었다. 그 체계는 도(道), 부윤(府), 대도호부(大都護府使), 목(牧), 도호부사(都護府), 군수(郡), 현(縣)으로 각 고을 마다 그 책임자가 일을 보는 행정 관청인 읍성(邑城)이 있었으나, 1895년 갑오경장으로 이러한 지방 행정조직이 재편됨에 따라, 전국의 각 읍성(邑城)은 폐허의 길로 접어 들었다.
지금 지방에 가면 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읍성이 거의 없다. 그중 전남의 낙안(樂安)읍성, 충남의 해미(海美)읍성 정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지금도 관광 매력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충남 천안 북쪽, 직산현(稷山縣)의 읍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관아(官衙)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연암 박지원이 군수 생활을 했던 면천군(沔川郡) 읍성은 폐허가 되었으나, 다행히, 정문 한쪽 토성은 남아 있어 여기가 관아 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지방 관광을 활성화하려면, 각종 축제나 이벤트를 새롭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수백년간 있었던, 읍성을 재현하여, 장소의 진정성(Authenticity)도 확보하고, 방문객들에게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해미읍성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1839년 기해교난(己亥敎難) 등으로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죽어간 곳이며, 지금은 해미읍성이 순교지로 성역화 되면서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져 있고, 한없이 평온해 보여, 방문객들의 쉼터 역할을 독특히 하고 있다.
전국에 330여개에 달하는 부, 군, 현의 읍성을 모두 살릴수는 없다. 그러나, 면천 읍성 같은 흔적이 남아 있고, 부지가 확보된 읍성은 지역의 정체성과 관광 발전을 위해서라도 재현시키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전국의 각 철도역 안내판에도 예전의 고지도를 활용하여, 지역의 역사성을 잘 홍보한다면, 그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그 장소에 대한 정확한 역사와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몇주 전, 천안 시립 박물관을 방문하였는데, 지금의 천안시는 과거, 천안군(天安郡),목천현(木川縣),직산현(稷山縣) 등 고려, 조선시대 3개의 지방 행정기관이 통합되어 만들어 졌다. 따라서, 박물관도 천안이라는 것으로 두리뭉실하게 설명할게 아니라, 각각의 지역 고유의 특징과 문화재 등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설명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직산현은 사직을 모신 산이란 뜻으로, 고대 목지국의 수도이며, 삼국 유사에 의하면, 위례금직산(慰禮今稷山)이란 사실과, 고지도에 위례성 표시가 있는데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매우 아쉽다.
잊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각 고을의 장소성을 되찾을 날은 올 수 있을까? 그것은 각 고을 주민들의 자기 고향 바로 알기 운동과 주민 의식이 합쳐질 때 이루워질 것으로 생각한다.
관광 마이스 칼럼니스트 장 태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