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커피 내음, 그 속의 역사

커피도 계급의 시대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싸구려 커피>를 노래하는 동안 한쪽에선 사향고양이 배설물에서 추출한 인도네시아 산 ‘루왁 제뉴인’을 50g에 65만원 주고 맛을 음미한다. 충혈 된 눈의 야근하는 직장인들은 자판기 커피가 100원 올랐다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는 동안 대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5000원 하는 커피전문점의 에스프레소 향을 평가한다.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에 의해 우리나라 커피 역사가 시작된 이후 1950년대 미군 PX 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커피가 국내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지게 됐다. 극강의 노동시간과 질을 따질 수 없는 삶속에서 간편함이라는 장점의 인스턴트커피는 본래의 커피를 왜곡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라는 신종 직업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수많은 커피 종류를 줄줄이 외는 아마추어 전문가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멀리 가지 않고 부모님 세대가 본대로 충분한 ‘격세지감’ 이다.

네덜란드에도 ‘ 문익점 ’ 이 있었다?

 

6 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진 커피는 최초에는 음식으로 이용했다. 열매를 통째로 ‘씹어 먹거나’, 열매를 분쇄한 후 동물의 기름 등과 섞어 바의 형태로 ‘씹어 삼켜지던’ 커피가 지금처럼 물에 우려 ‘마신다’는 생각을 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3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지역으로부터 아랍세계로 널리 전파된 커피는 예멘 외의 지역에서의 재배를 제한했다. 의도적으로 커피의 발아력을 파괴한 이러한 시도는 초기 커피전파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슬람 문명과의 문물교류로 커피의 맛에 매혹된 유럽인들은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막강 권력 교황청에 눈치 보이는 이교도와의 교역도 문제지만 필요량을 모조리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은 어쨌거나 유럽의 ‘농업스파이’ 를 만들어내기에 적당한 사회 분위기였다.

 

그중에서 농업 국가였던 네덜란드는 우연히 인도에서 발견한 커피 종자를 훔쳐내게 된다. 마침내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커피 재배에 성공하고 이는 유럽에 커피문화가 찬란하게 싹트는 순간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커피의 향기와 각성효과는 그들의 예술혼을 일깨우는 마법의 음료였고, 커피의 부흥과 함께 유럽 문화가 꽃을 피운 점은 상기할 만하다.

일일이 세지도 못하는 커피의 종류

 

상업적인 목적으로 재배되는 원두의 품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그리고 둘을 접목시킨 아라부스타가 그것이다.

최근 각종 커피전문점에서 각광받고 있는 아라비카 원두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커피 품종이다. 원산지가 에티오피아인 이 원두는 주로 높은 지대에서 생산되는데 맛과 향이 모두 우수해 레귤러 커피에 사용된다.

로부스타종의 원산지는 콩고의 저지대에서 재배되는데, 성장이 빠르고 병충해에 강한 것이 특징이다. 아라비카 품종에 비해 맛과 떨어지는 반면에 재배비용이 적게 들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이렇게 생산된 로부스타 원두는 아라비카 원두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되며 대부분 인스턴트 커피로 탈바꿈한다.

맛과 향기가 뛰어난 아라비카 원두와 병충해에 강하고 생존력이 우수한 로부스타를 교배한 새로운 품종인 아라부스타는 콜롬비아에서 주로 생산된다.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쌍둥이라도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듯이 품종만으로 커피를 구분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생산지에 따라 똑같은 아라비카 원두의 가격은 큰 차이를 보이고 그 종류도 나라별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

케냐에서 생산되는 ‘케냐 AA’ 는 최고의 아라비카 커피로 평가받는다. 케냐커피의 기름지며 강한 향미가 특징이다. 커피원산지로 알려진 에티오피아는 ‘예가체프’ 가 널리 알려졌다. 과실의 상쾌한 신맛과 아로마향을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깊은 향은 맛볼 수 있다. 이밖에도 자마이카의 ‘블루마운틴’, 브라질의 ‘산토스’ 예멘의 ‘모카’, 인도의 ‘몬순말라바’, 하와이의 ‘코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재배되는 ‘만데린’ 등이 유명하다 .

이것만 알면 나도 ‘바리스타’ 급

 

이제는 많이 친숙해졌지만 커피산업이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커피와 관련된 용어들도 매우 다양하다. 앞으로의 기획기사를 위해 몇 가지 용어들의 의미를 알아두자.

커피 맛을 결정하는 4 가지 평가기준
1. 산도 (Acidity): 커피의 풍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맛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열매의 신선함을 판가름하는 맛 인자다.
2. 아로마 (Aroma): 후각으로 맡을 수 있는 향기를 말한다.
3. 무게감 (Body): 입안에서 감지되는 무게감과 밀도에 대한 인상을 말한다.
4. 풍미 (Flavor): 아로마로 감지한 향이 입 안 가득 느껴지는 맛을 의미한다.

모카 (Mocha): 예멘 남서 해안의 작은 항구도시로 양질의 커피를 수출하던 곳이다 . 지금은 에스프레소에 초콜릿 맛을 첨가한 커피를 지칭한다.

에스프레소 (Espresso): 아주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하며 1 온스 , 약 30ml 분량의 데미타스 잔으로 마신다.

드립 (Drip):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 중에 종이나 천을 이용한 추출법을 말한다.

블랜딩 (Blending): 여러 산지의 원두를 혼합하는 것을 블랜딩이라 한다.

로스팅 (Roasting): 커피의 맛과 향이 최상이 되도록 적합한 조건으로 생원두를 볶는 공정을 말한다 . 로스팅을 통해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이 만들어진다.

글: 김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