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기슭에 자리 잡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Millenium Hilton Seoul)은 소위 집창촌(集娼村)의 대명사로 불렸던 서울역 앞 양동(陽洞)언덕에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 1936~2019)회장이 1983년 지하 1층·지상 22층, 700여 객실 규모로 지은 5성급 호텔이다.
근대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의 건축 철학을 한국 건축가가 한국 땅에 재해석한 건축사에선 기념비적 공간이었다.
호텔을 설계한 사람은 1세대 현대건축가로 알려진 미국 일리노이대 학장을 지낸 김종성(1935~)씨다.
그는 “세계적 호텔을 지어달라”는 김우중씨의 요청을 받고 교수직을 그만두고 귀국해서 힐튼호텔을 설계하여 완성시켰다. 역작(力作)으로 꼽혔다.
당시만 해도 국내의 호텔들은 조선, 코리아나, 프레지던트. 대연각, 워커힐 등 자국브랜드로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힐튼호텔이 세워지면서 소위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를 사용함으로써 프랜차이즈(Franchise) 경영시스템이 도입된 셈이다.
박사과정 중 힐튼호텔의 프랜차이즈 계약서를 입수하여 프랜차이저(Franchisor), 프랜차이지(Franchisee), 총영업이익Gross Operating Profit)등의 용어에서부터 GOP배분의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이후, 하얏트, 라마다, 소피텔, 웨스틴(Westine), 홀리데이인, 인터콘티넨탈, 메리어트, 아코르 등 세계적 호텔 체인들이 속속 상륙하게 된다.
이 호텔을 인수한 이지스자산운용은 호텔을 허물고 2027년까지 오피스와 호텔 등의 복합단지를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호텔을 잘 아는 사람들은 “힐튼호텔을 허무는 것은 신라 범종(梵鐘)을 녹여서 가마솥을 만드는 것과 같다며 건물해체에 대해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100년 기업이 즐비한 일본이나 스위스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애써 지은 호텔이 40년도 못 버티고 사라진다니 새해벽두부터 스산한 바람이 마음을 짓누른다.
글:정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