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면 보름, 짧으면 1박 2일…. 길든 짧든, 여행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봄 한철 반짝 피고 사그라드는 벚꽃처럼.
그러나 좋은 여행지에 가면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자가 아닌 동네 주민으로서 그 지역에 살고 싶은 건, 누구나 한 번씩 꾸는 꿈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일상을 즐기며 사는 삶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나 역시도 독일의 라이프치히, 이탈리아의 베로나, 프랑스의 망통 등 더 있고 싶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도시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다.후쿠오카를 처음 방문한 건, 저렴한 항공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당시 엔화가 미친 듯이 높아서 1600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덕에 상대적으로 관광객은 줄어서 왕복 10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티켓이 나오곤 했다. 후쿠오카는 내게 도쿄와 오사카에 이은 두 번째 일본 여행지였다.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됐지만, 앞선 두 도시에 비해 덜 번잡한 이곳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역 분위기만큼이나 온화한 사람들도 좋았고, 2시간 남짓 거리에 좋은 온천지역 벳부나 유후인이 있다는 사실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게다가 원전 사고 이후로는 일본 여행지는 고민 없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큐슈였고, 그 관문은 매번 후쿠오카였다. 이런 이유로 내 첫 여행 책은 후쿠오카 가이드북이 됐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숙소를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원룸을 임대하면서, 나는 오랜 꿈인 지역 주민의 삶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10번 정도 방문하면서도 전혀 몰랐던, 이곳 사람들의 진짜 삶, 진짜 후쿠오카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동안 후쿠오카에 오면 늘 하카타역나 텐진 역 인근이었으니 당연했다. 그에 비해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보니,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낮이면 병아리 같이 떼 지어 현장학습을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났으며, 마트에서는 저녁거리를 장을 보는 할머니들을 만났다.그러다보니 날이 갈수록 동네가 좋아졌다. 후쿠오카 시민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이, 그들이 즐겨가는 곳, 그들의 동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흥미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람 냄새 나는 시장이었다.
“후쿠오카에도 전통 시장이 있어?!”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후쿠오카에는 크고 작은 시장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단 관광객의 동선과는 먼 곳들이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야나기바시 시장, 카와바타 아케이드, 미노시마 시장 거리, 나가하마 시장, 니시진 시장 등이 있다. 아마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이중 볼거리가 쏠쏠하고 접근이 용이한 세 곳의 시장을 소개한다.
tip 시장은 토요일 오후에 방문하자! 평일에는 다소 조용한 시장이 가장 활기차게 변하는 시간이다.
떡집도 비중 있게 자리 잡고 있다. 타카시마야(高鳥屋)에는 건조된 떡이나 모찌, 당고 등을 각종 떡과 화과자 등을 판매한다. ‘타카마츠가마보코’는 다양한 어묵을 판매하는 곳으로, 하나에 35~150엔씩 판매하는 어묵을 골라 담는 재미가 있다. 만들어진 재료에 따라 맛은 각기 다르다. 포장된 그대로 어묵탕을 끓여 먹어도 좋은 세트 구성도 있다.
그러나 이 가격에 먹기 미안할 정도의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두툼하게 썰린 회는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며, 시장 특유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회의 양도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