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바라보는 포트 엘리자베스는 예쁜 그림 엽서 한 장이다. 연모 하는 이에게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봄 날, 슬며시 밀어 넣은 연서와 같은 풋풋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곳이다.
포트 엘리자베스라는 도시의 이름은 거친 삶의 내음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품위 넘쳐 흐르는 중세 유럽 귀족 가문의 여인네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포트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시대를 살아온 이 지역의 선조들이 겪었을 수탈과 그로 인한 고난과 빈곤의 시간이다.
식민시대의 초엽인 1820년, 케이프 주의 총독대리 던 킹이 자기 부인 엘리자베스 던킹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짓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위치에 기념탑을 세웠다는 것을 전해 들으면서 비록 먼 나라가 겪은 과거의 일이지만 부화가 은근히 쳐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도시의 모습은 설익은 과일과 같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다. 남아공에서 세번째로 큰 항구도시인 이곳은 식민시대에는 다이아몬드광산으로 유명한 킴벌리에서 채굴한 다이아몬드를 유럽으로 보내던 곳이며 현재도 내륙국인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철도로 연결하여 그들의 외항 역할을 하는 중요한 항구 도시이다.
포트 엘리자베스의 식민시대는 1799년 영국인이 이 곳에 프레드릭 요새를 지으면서 시작된다.이후 1873년 킴벌리와 철도를 연결하면서 도시는 급속히 발전 팽창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과 일자리를 찾는 백인들이 대거 찾아 들어오면서 번영의 시대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농익은 중년 여인에 화사함을 더한 도시의 모습은 인종차별의 시대가 끝난 1994년 이후에는 일부 백인들의 주거 지역 외에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이 벗겨낸 빌딩과 건물에 파스텔 톤 페인트에 덧칠이 시작되고 미래의 블루프린트가, 과거 영광의 시대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아공 최고의 관광지로 이 도시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나서니 사람들은 기대와 희망으로 저마다의 꿈을 다시 세운다.
포트 엘리자베스 시의 최고 관광도시 되기 프로젝트는 이미 시동을 걸은 지 오래, 넬슨 만델라 베이 관광청의 CEO Mandlakazi Skefile는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는 국제관광상품을 만들고 아를 홍보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지난 시대의 번영의 상징물이었던 항구를 새로이 건설된 신항으로 이전하고 구 항구를 케이프타운의 워터프론트와 유사한 형태로 개발하는 대 역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포트 엘리자베스의 워터포론트는 이미 도시민들의 문화 휴식 식도락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아 주말에는 도시안의 모든 흑인과 백인, 아시아안과 컬러드가 모여들어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사람들의 만남을 만들어 내고 있다.
포트 엘리자베스 개요
인도양에 연해 있는 포트 엘리자베스의 날씨는 온화한 편, 여름에도 30도를 넘기는 일이 드물고 겨울은 영하로 내려가는 법이 없다. 연평균 기온은 18도 정도로 인간이 살기에 최적의 날씨이다. 포트 엘리자베스 역시 남아공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물부족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최악의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인구는 지난 수년간 상당한 증가세를 기록하여 현재 150만에 근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프리카의 디트로이트로 불릴 정도로 자동차산업이 발달한 곳으로 폭스바겐, ㅎGenal Mortors의 현지공장이 가동 중이며 최근 중국의 상용자동차공장이 신설되어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지어진 포로티아(Protea, 남아공 국화) 형상의 넬슨 만델라 스타디움이며, 아프리카 펭귄의 최대 서식지인 Algola Bay의 Saint Cronix섬이 유명하다. 7월부터 10월까지 가까운 바다에서 초대형 고래 southern Right Whale과, 거대 상어 Great White Shark 등을 볼 수 있는데 세계 최대로 알려진 Southern Right Whale과 Great White Shark를 포함해서 남아공 7대 Big5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글 사진: 이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