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역사의 시간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여행

비오는 토요일 이른 아침… 배낭과 카메라를 챙겨 설렘과 기대 그리고 소박하지만 욕심 부렸던 나만을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내 나이 오십대 중반에 이르고서야 찾은 자그마한 내 꿈의 생활은 ‘여행과 사진’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기다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란 화폭 속에 오늘은 어떠한 그림들이 어떤 모습으로 채워질지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절로 흥이 실리는건 어찌할 수가 없다.

# 여행 동무들과의 첫 만남
버스에 첫 발을 딛고 생면부지인 여행자들 각각의 얼굴을 둘러보며 마음 속 그날의 내 여행 동무들 모습을 각인 시킨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성격도 모두 다른 이들과의 첫 대면은 왠지 서먹서먹…..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하나 경계의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다. 첨본 이들이지만 경계할 이유도, 살펴 주의해야할 이유도 없는 것은 모두 여행이란 설렘과 때묻지 않은 꿈을 함께 꾸기 때문일 것이다.

멋쩍은 웃음과 어줍잖은 악수 한 번에 마음을 열어 줄 수 있는 것 또한 여행만이 가진 묘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여행의 시작의 문고리를 열었다.

# 에덴의 동산에 세워진 성스런 조각성물들

오늘의 첫 행선지는 ‘공세리 성당’이다. 충남 아산시 인주면에 위치한 공세리 성당은 ‘태극기 휘날리며’ ‘에덴의 동쪽’ ‘사랑과 야망’ 등 수많은 영화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브라운관 속에 비쳐지는 교회(성당)의 모습은 늘 ‘꼭 가보고 싶은 곳’이란 텍스트로는 부족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며 카톨릭에서는 32명의 순교자를 모신 ‘카톨릭 성지’이기도 한 곳이다.

공세리 성당 성지에의 첫 느낌은 아름다움과 그 속에 스며져 흐르는 잔잔한 성스러움, 그리고 성지 곳곳에 가득한 경외감이었다. 성지 입구에는 잘 정돈된 정원과 사제관이 위치해 있고, 그곳엔 오가는 이에게 강복하시 듯 보이는 커다란 모습의 그리스도상이 위치해 있었다. 이곳이 성지이며, 성당이 있는 곳이란 걸 첨으로 느끼는 순간이다.성당 언덕으로 향하는 첫 돌계단을 오르면 짙푸른 나뭇가지와 고개 내민 꽃들 사이로 성모님과 요셉 그리고 아기예수님이 함께 모셔진 조각성물이 보인다. 커다란 위용과 엄청난 힘의 상징이 아닌 수풀사이 나즉히 서 있는 조각성물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그 앞에 서게 하여 한번쯤 맘속으로 ‘나의 오늘’을 기도하게 한다.

그리고 좀 더 성당이 위치해 있는 언덕을 오르면 340년도 더 된 보호수 팽나무 그늘아래서 파티마의 성모상을 조각해 놓은 하얀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순결한 그 아름다운 모습에 한참을 두 손 모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공세리 성당이 성지임을 알 수 있는 32위 순교자 현양비는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크나큰 선물이며, 절대적 상징의 조각비라 할 수 있겠다.

순교자의 이름도, 역사도 알지 못하지만 현양비 앞에 놓인 초들이 카메라 셔터에만 신경쓰고 있는 나를 숙연하게 했다.

이밖에도 성지 곳곳, 성당 주변엔 오래 된 성당의 조각성물들이 자리하며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성지 발길 닫는 곳곳마다에 이러한 조각성물이 자리하면서도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이곳의 오래되고 성숙된 자연과 교회의 성스러움이 찾는 이의 마음을 편안히 포용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 공세리 성당의 고딕양식 건축물과 본당

조선시대 충청도 남서부 일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의 자리였던 이곳에 1865년 6월 애미리오 신부는 충남일대 최초의 교회(성당)를 세운 것이 바로 공세리 성당이다. 올해로 116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성당은 그 역사의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고딕양식의 건축물들로 세워져 있다.

공세리 성지 가장 언덕 위에 세워진 본당은 요즘의 교회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아담하면서도 거룩하고,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그래서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하기 힘이 들 정도이다.
본당 입구 옆에는 340년의 세월동안 이 언덕을 지키고 있는 거목 보호수(팽나무)가 있다. 지금은 공세리 성당을 찾는 이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여름날 소낙비를 피하게 하는 자락이 되어 성당의 본당만큼이나 성스러움을 내뿜고 있다.

오랜 세월 생명을 이어온 거목과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본당의 숭고함이 그 어떠한 건축물의 화려함이나 거대함보다 더 크게 가슴에 와 닿는다.

본당 안으로 들어갈 때면 신발을 벗고 나무로 이루어진 옛날 마루바닥으로 들어서게 된다. 7~80년대의 초등학교 교실 마냥 손때 묻은 나무 바닥이 그 세월을 짐작케 하고, 유리 창문에 새겨진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이내 눈길을 잡는다.

본당 왼편에는 카톨릭교회 박물관과 베네딕도관이 있다. 그 역시 오랜 역사의 건축물이라 나지막한 문과 창문, 붉은 벽돌과 회색돌로 장식된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베네디도관’이란 공세리 성당의 주보인 ‘베네딕도 성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그곳에선 성당에서 사용되어지는 묵주나 십자가 고상 등의 성물이 판매되고 있었고 이를 쉽사리 접해 보지 못한 나로선 한참을 구경해 보고 들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녹음의 수풀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있고 수백년의 보호수 들이 성당 주변에 산재해 경탄을 자아내는 이곳이 언제까지나 지켜져 오늘의 내가 가지고, 선물 받은 이 느낌을 더 많은 이들에게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약 500년을 거스르는 외암리 민속마을
요즘은 지방마다 민속마을 하나쯤은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외암리 민속마을로 향한다는 말에 그리 설레거나 기대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외암리 민속마을 입구에서 나를 들뜨게 한건 민속마을의 초가지붕이나 기와처마가 아닌 섶다리 아래로 흐르는 풍성한 시냇물이었다.

섶다리 아래로 흐르는 개울

장맛비가 며칠 와서인가 시냇물 굽이치는 소리가 요란하고 어릴 적 시냇가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연신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관광단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부락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500년 전부터 형성되어 이어온 부락이다. 충청 고유격식의 반가 고택과 초가 그리고 골목과 밭두렁을 이어놓은 돌담길 무엇보다 그 집집마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집주인들이 아직도 그 터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이었다.
돌담 위에 핀 푸른 생명의 풀 한포기, 검은 돌담길을 따라 앉은뱅이 꽃을 틔운 이름 모를 작은 꽃들, 한 여름날 여자아이들의 손톱 위에 올려 예쁜 손톱물을 들여 줄 붉은 봉숭아들이 소담하게 피어 민속마을의 정취를 한껏 고취시키는 듯 했다.

예전 관직명이나 출신지, 직업을 따라 택호를 정하고 가가호호 나름의 택호가 있었다. 건재고택(영암군수댁), 참판댁, 참봉댁, 송화댁(송화군수를 지낸집) 등으로 불리며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오늘 손길 닿고 매만져 보았던 이 돌담과 수백년을 마을을 지키며 함께해 온 마을거목의 보호수는 아주 오래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 마을에서 사용되었을 연자방아와 디딜방아….. 그 길을 오가며 돌탑에 돌 하나를 올리고 평안을 바랬을 그들을 머릿속으로 연상하며 하나하나를 사진 속에 담는다. 살아 숨 쉬는 마을이라고 해야 할까?
빈집으로 초가이엉이 내려앉은 모습 대신 집집마다 사람소리 아이들 소리로 가득한 민속 역사의 마을이 되어 주길 나또한 돌탑 앞에서 바래본다.

# 여행에서의 또다른 즐거움 … 사람과의 만남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번 여행에서 지금껏 내가 알지 못한 여러 사람들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곳을 여행하며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느낌의 공감대를 가졌었다.

시간이 흐르고 낯익어가는 동행자들이 조금씩 마음으로 가까워져 갈 즈음, 오가는 그들을 향해 멋쩍은 미소도 지어보이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몇 마디의 인사도 건네게 된다. 남녀의 구별도 필요치 않고, 나이의 많고 적음도 괘념치 않다.

어느 순간 서로의 찍은 사진을 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카메라를 설명하며 서로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의 물고를 트게 된다. 사실 각자의 개인적인 신상은 이 같은 여행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취미를 나누어 즐긴다는 것이 전부 일뿐이다.

그렇게 만난 여행 동무들과의 저녁식사 시간을 맞았다.

아침나절 서먹서먹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모두들 상대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며 여행의 즐거움에 빠져 있노라니 참으로 행복하고 가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의 둑도 열어두고 생각의 턱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 내 여행길에 이들이 있어 더욱 풍성하고 행복함을 느낄 뿐이다. 어느 장소, 어느 순간에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번 여행자들과의 만남에 감사해 하며 꼭 다시 그들과의 좋은 여행의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글: 구윤정 사진: 이정찬

취재 지원 : 니콘 이미징 코리아 http://www.nikon-image.co.kr